육두구, 뉴욕과 맞바꾼 향신료 (3)

2020. 11. 9. 00:42잘 모르는 상식

당시 세계 유일한 육두구 산지인 반다 제도에 도착한 네덜란드인들은 포르투갈인들을 몰아 내고 육두구 독점 거래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당연히 기존과 같이 자유거래를 하면서 가장 가격을 높이 부르는 이에게 팔려고 하였죠. 


1609년 현지인들은 협상을 한다고 유인하여 네덜란드 협상단과 경호대 총 46명을 죽입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네덜란드인들이 마을을 파괴하고 약탈을 하니 현지인들은 결국 네덜란드에 독점거래권을 인정해 주게 됩니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이를 감시하기 위해 Banda Neira(아래 파란색 박스)에 요새를 세웁니다. 

 Banda Neira에 만든 요새 Fort Nassau, 출처 : Public Domain


폭력에 굴복하여 네덜란드에 독점권을 준다고는 했지만 반다제도 사람들은 여전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 때 영국이 더 좋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접근하자 반다제도인들은 폭력적인 네덜란드인들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간청하게 되죠(사실 영국인도 마찬가지인데 이 때는 잘 몰랐겠죠). 


이를 알게 된 네덜란드는 요새가 있는 Banda Neira 뿐만 아니라 반다 제도 전체를 점령해야겠다고 1614년 결정합니다. 


영국은 첫번째 지도 왼쪽에 있는 Run 섬의 요새에서 1616년부터 4년간 버티다가 결국 네덜란드에 점령되고 Run 섬에 있던 육두구 나무는 다 베어 버립니다. 


네덜란드는 1620년 Banda Besar 섬까지 침략하면서 원주민 15,000명 중 90%가 살해당하거나, 노예가 되거나 추방당합니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반다 제도를 완전히 장악하고 노예를 이용하여 육두구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향신료 제도, 출처 : https://spiceislandsblog.com/2013/01/03/spice-islands-sailing-adventure-2012-the-banda-islands/


이 근처에는 반다 제도뿐만 아니라 정향으로 유명한 말루쿠 제도도 있었는데 이 값비싼 육두구와 정향은 중간에 위치한 Ambon에 집결하게 되어 있었죠. 


1619년 네덜란드와 영국 본국에서는 방위 조약을 맺고 동인도 무역에서 상호 협조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지구 반 바퀴 돌아 멀리 있는 현지에서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는데 1623년 Ambon에서 반역 행위를 하였다는 혐의로 영국인 10명, 일본인 9명(??, 이 당시는 임진왜란도 끝났고 해서 일본 낭인이 용병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과 포르투갈인 1명이 참수 당했습니다.  


이 참화를 피한 영국인이 본국으로 돌아가서 이 사건에 대해 보고를 하자 영국은 노발대발했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였으나 차일피일하다가 관련자들은 죽고 없는 그런 상황이 됩니다. 


이후로도 네덜란드-영국 간의 무역 패권 때문에 결국 전쟁이 벌어지고 1차 전쟁(1652~1654년, 영국 승리), 2차 전쟁(1665~1667년, 네덜란드 승리) 끝에 브레다 조약에서 영국은 Run섬에 대한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고 당시 뉴암스테르담, 현재 뉴욕을 받게 됩니다.  네덜란드는 1+1으로 수리남도 받게 되는데 아래 기니와 가이아나 편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2020/11/03 - [잘 모르는 상식] - 기니와 가이아나



이미 1620년부터 네덜란드가 실제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Run섬인데 굳이 뉴욕과 맞바꿀 필요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만큼 육두구의 수익성이 좋아서 그랬다고 봐야 할까요?


이후로 영국은 향신료 사업에서 완전히 발을 빼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이는 나중에 다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