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8. 00:11ㆍ잘 모르는 상식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항해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은 아시아 각지에 요새와 상관을 만들고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까지 진출합니다.
포르투갈 교역 Route, 출처 : the red hat of Pat Ferrick at Wikimedia Commons
물론 육두구 섬도 물어 물어서 1512년에 찾아 냅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여러 가정 아래 계산하였지만 후추가 금값의 60%, 육두구가 금값의 130%인데 이 모든 것을 포르투갈이 원산지와 직거래를 하면서 돈방석에 앉게 되지요. 당연히 포르투갈은 항해 지도를 극비 문서로 철저히 관리하여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하지만 워낙 수익성이 높으니 숟가락을 얹고 싶어 하는 나라들이 많이 있었죠 그중 한 나라가 네덜란드였습니다. 네덜란드는 일찍부터 청어 잡이를 통해 돈을 많이 벌었는데 이 당시 청어는 일반 서민들에게는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청어 잡이를 통해서 조선 기술이나 항해술도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청어절임 샌드위치, 출처 : https://www.seriouseats.com/2008/07/netherlands-national-dish-the-raw-herring-san.html
우리는 반건조의 과메기로 먹고 여기서는 염장을 해서 먹는데 엄청 비리다고 합니다.
뭐 다른 외국인 입장에서는 반건조나 염장이나 마찬가지이겠죠.
그러는 동안 포르투갈에 변고가 발생하는데 포르투갈 왕조의 대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다가 1580년에 스페인 왕이 포르투갈 왕을 겸직하게 되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동군연합(同君聯合)이 됩니다. 왕은 같고 나라는 별도 두 개인 것인데 포르투갈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독립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포르투갈 왕까지 겸직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 출처 : Public Domain
영어로는 Philip입니다. 필리핀(Philippines)의 국명은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
이 동군연합 이후 스페인 귀족도 항해 지도를 접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 때 네덜란드가 매수를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네덜란드인들이 포르투갈 상선에 승선하여 기술 동향을 파악하는 등 산업 스파이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정보를 모읍니다.
드디어 1594년 네덜란드는 아시아로 배를 띄우는데 포르투갈이 처음 인도 항해를 성공한 것이 1498년이니 거의 100년 차이가 납니다.
후발 주자인 네덜란드는 후추보다 더 비싼 육두구 산지로 바로 가기를 원했고 드디어 1599년 반다 제도에 도착하게 됩니다. 네덜란드는 육두구를 독점하고자 하였고 경쟁국과의 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죠.
2편으로도 안 끝나네요. 쩝. 다음에 계속 이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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