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와 한국의 독립기념일이 다른 이유

2020. 11. 1. 22:16잘 모르는 상식

2차 대전시 일본은 원폭 2방을 맞고 일본 천황의 육성 녹음으로 1945년 8월 15일 정오 항복선언을 하죠. 그래서 우리 나라는 이 날이 광복절인데 일본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독립기념일은 8월 17일입니다. 


처음 인도네시아 왔을 때 2일이 늦은 이유는 여기의 통신이 구려서 전달이 늦었을 것이다라고 지레 짐작을 하였는데 실상은 좀 다릅니다. 


지금도 자카르타 국제 공항 이름으로 딱 박혀 있는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과 부통령인 Soekarno와 Hatta는 네덜란드 식민지배 시절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되는 등 요주의 인물이었으나 1942년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 난 뒤 일본군에게 협력하도록 인도네시아인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맡깁니다. 


Soekarno와 Hatta도 일본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일본에 협력하죠. 그리고 1943년에는 일본으로 가서 천황의 훈장도 받습니다. 캬 친일 냄새가 물씬 풍기죠. 


1945년초 일본은 인도네시아 독립조사 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수카르노를 위원장으로 앉히죠. 1945년 8월 14일 도쿄 어전회의에서 무조건 항복을 최종 결정하였는데 이날 이 두명은 동남아 일본 총사령관의 주둔지인 베트남 사이공에서 회의 참석 후 비행기를 타고 자카르타로 돌아 왔습니다. 공항에서 이들을 기다린 급진 학생조직 Menteng 31은 바로 다음날인 8월 15일 독립 선언을 하라고 종용하지만 이 두명은 일본의 정식적인 권력 이양까지 기다려 보자고 버팁니다. 


참다 못한 Menteng 31은 8월 16일 새벽 이 두명을 납치하여 독립선언 관련 강요를 하였고 당일 밤에 풀어 줍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8월 17일 마침내 인도네시아 독립선언을 하게 됩니다. 하여튼 우리 나라와 이틀이 차이 나는 것은 통신이나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ㅎ


Soekarno는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을 하였고 1961년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긴자 고급술집에서 21살 미모의 여성을 만나 한 눈에 반해 귀국 비행기에 바로 태워 데려와서 3번째 부인으로 삼게 되죠. 

데비 수카르노 (1940년 ~ ), 출처 : 나무위키


일본 태생이지만 상당히 서구적으로 생겼다고 합니다. 수카르노 사이에 한 명의 딸이 있는데 출산을 하러 일본으로 갔다가 수카르노가 실각하면서 인도네시아에 돌아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 뒤 석유회사들이 그녀를 통해 대 인도네시아 정부 로비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일본 회사들도 많이 하지 않았을까요? 아마 일본 정부가 미래를 위해 인도네시아인들이 좋아할 만한 이목구비를 갖춘 여성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면 너무 억지일까요?


지금 인도네시아 거리에 돌아 다니는 차들의 90% 이상이 일제 자동차인데 데비 수카르노의 공헌도가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